w. 열애 님
카오스에게 있어 영웅이라는 이름은 복잡한 감정을 내포했다.
낯선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불합리한 의무 사이, 이질적인 제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과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다는 의지가 충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어나는 의문은 이 세상에서 저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아득하게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젠가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라면. 이렇게 욕심을 부리고 싶으면 불평은 하지 말아야겠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지. 짊어진 무게에 놓아버린 것들을 결코 아쉬워하지 말아야겠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세계의 끝을 향하는 강을 따라 그녀가 놓쳐버린 것들이 흘러간다. 난생 바란 적 없던 불행에 생각도 함께 젖는다. 제 발자국마다 떨어진 눈물은 점점이 이어져 이내 이름 모를 마천루로 고여든다. 감히 너무 슬퍼했던 탓일까. 결국 낙루를 견디지 못한 탑이 무너진다.
카오스. 내가 이해할게. 내가 너를 전부 이해할게.
물기를 머금고 무거워진 정신에 소년의 진심이 파문을 일으킨다. 작은 물결은 한 발 늦은 자각을 집어삼켜, 소녀를 영원히 뒤흔들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비로소 네 결함을 채울 결심이 선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니키. 나랑 가자. 내가 가는 길의 끝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가자.
소년은 그제서야 웃었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웃음 소리와 함께 단단한 손끝이 소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카오스는 그의 행동이 인간인 자신을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벅찬 감정이 턱 아래까지 차오른다. 분명 우리는 추락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금방이라도 비상할 듯이 숨이 찼다. 나는 기꺼이 네 품으로 뛰어들며 지난 날을 새겼던가. 끝을 각오했던가. 함부로 미래를 그렸던가.
진심이란 무엇인가. 그는 선명한 노을의 궤적으로 저를 괴롭히던 의심을 걷어내고, 비극의 종막을 알리듯 비산하는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낯선 우주를 더는 혼자 헤매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서로의 숨결마저 닿을 듯한 거리. 서툰 고백이 앞선 마음으로 달싹이던 입술을 두드린다.
지금 마주 잡은 손을
우리 절대 놓지 말자
웃음과 울음에는 간극이 없다. 소녀도 그제서야 웃었다.
솟구치는 바닷바람이 시린 줄도 모르고, 마침내 찾은 온기에 기대어.